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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채금리 급등, 단순한 인플레이션 때문이 아니다

by 특수정찰인 2025. 5. 20.

 

최근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라는 전통적인 설명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시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훨씬 더 복합적이고, 위험한 징후들이 포착된다. 시장은 단순히 금리를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국채, 나아가 ‘달러’에 대한 신뢰 그 자체가 흔들리는 조짐이 보인다.

 

베일에 싸였던 고위험 투자전략, 결국 터지다

한국은행은 이번 금리 상승의 배경을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시장에선 그 중 하나로 일본계 헤지펀드가 60배 레버리지로 미 국채 10년물에 베팅했다가 강제청산당했다는 루머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들은 ‘베이시스 트레이드’라는 차익거래 전략을 구사했는데, 미국채 현물을 매수하고 같은 만기의 선물을 매도하는 구조다.

평상시엔 안정적인 수익을 노릴 수 있지만, 문제는 레버리지다. 현물 가격이 소폭 하락하자 투자금 전액이 날아가는 수준의 손실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강제 청산이 이어졌다. 국채 현물 시장의 매도 압력이 커지면서 다시 국채가격은 하락하고 금리는 오르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 같은 포지션 청산 가능성은 루머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공식적으로 단기투자자들의 청산 움직임이 금리 급등의 요인 중 하나라고 인정했고, 시장 역시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스왑시장과 은행 자금흐름, 이상 신호는 이미 있었다

국채금리 상승의 또 다른 원인은 은행 시스템 내부에서 비롯됐다. 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인해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은행대출로 전환했고, 이에 따라 은행들의 여유자금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여유자금이 줄자 은행들은 국채 매입을 꺼리게 됐고, 일부는 보유 국채를 매도해 유동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금리 스왑시장에서도 감지된다. 미국 은행들은 변동금리 대출을 주로 하므로 금리 변동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스왑 거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최근 금리 스왑이 급증하면서 스프레드가 비정상적으로 좁혀졌다. 이는 은행들이 금리 상승에 대한 리스크 헤지에 몰두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외국인 매수 감소: ‘달러는 여전히 안전한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국인 수요의 이탈이다. 미 재무부가 실시한 30년물 국채 입찰에서 ‘간접입찰자’ 비중이 58.9%로 201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국 중앙은행이나 해외 투자기관의 수요가 급감한 것이다. 이는 7년물, 5년물, 심지어 2년물에서도 반복되는 현상이다. 입찰 경쟁률 역시 10년 평균인 2.4~2.6배를 하회했다.

이제 시장은 단순히 “국채를 사지 않는다”는 수준을 넘어, 변동성이 커진 미국채 대신 유럽, 일본 국채로 갈아타고 있다. 환헤지 비용과 미국 국채의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미국채보다 유럽채가 더 매력적인 상품이 되어버렸다. 이는 미국 국채와 달러에 대한 구조적인 회피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연준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 SLR 완화

이런 상황에서 다시 주목받는 것은 2020년에 한시적으로 시행된 SLR 규제 완화다. SLR(보완적 레버리지 비율)은 대형은행들이 충분한 자본을 유지하도록 만든 규제인데, 국채 보유도 레버리지 계산에 포함된다. 국채를 많이 들고 있으면 더 많은 자기자본을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연준이 이 규제를 다시 완화할 경우, 대형은행들은 부담 없이 국채를 사들일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5월 15일, 영국의 [FT]는 미국 금융당국이 수개월 내 SLR 규제 완화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를 강하게 원하고 있으며, 공화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한 지금, 규제 완화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 조치는 ‘최후의 수단’이다. 시장의 반응이 계속해서 냉담하다면, 연준은 결국 이 카드를 꺼내야만 할 것이다. 그 분기점은 5월 22일 예정된 10년물 국채 입찰이다. 이번 입찰까지 수요가 저조하다면, 미국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된다.

 

시장이 말하는 진짜 신호

지금 미국 국채시장은 단순한 금리 상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헤지펀드의 청산, 은행의 자금경색, 외국인의 이탈, 규제완화 카드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달러 시스템에 대한 신뢰 저하’**라는 훨씬 근본적인 경고일 수 있다.

연준이 이번에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이제 미국을 ‘무조건 안전한 나라’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금리보다 훨씬 위험한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