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끄는 발언을 내놓았다. 카타르 왕실이 자신에게 무려 4억 달러에 달하는 보잉 747 전용기를 선물하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 전용기를 대통령 임기 중 사용할 ‘임시 에어포스 원’으로 쓰고, 퇴임 후에는 대통령 기념관에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이 비행기가 신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카타르 왕실이 13년 동안 사용해온 중고 전용기다. 하지만 ‘중고’라고 폄하하기엔 무리가 있다. 침실만 세 개, 전용 라운지와 집무실까지 갖춘 이 보잉 747은 전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개인용 항공기 중 하나로 꼽힌다. 이미 플로리다 팜비치 공항에 도착해 있으며, 트럼프는 직접 내부를 둘러보기도 했다.
이 황당한 거래가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점은, 트럼프가 왜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미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사용해온 노후된 에어포스 원을 교체하려고 했지만, 보잉이 제작 중인 신형 항공기의 납기가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여파로 2027년까지 미뤄진 상태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임기 중 신형 기체를 이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논란은 당연히 뒤따랐다. 외국 왕실로부터 수백억 원대의 비행기를 받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트럼프는 “상대가 퍼팅을 봐주면 ‘고맙다’고 하고 공을 집어 들어야지, 굳이 자기가 치겠다고 고집하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답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제프리 본디는 이 선물이 “적법하다”고 평가했지만, 그가 과거 카타르 정부를 위해 로비스트로 활동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카타르 왕실은 왜 이런 거액의 선물을 하려는 것일까?
카타르는 충청북도만 한 국토에 인구 283만 명이 사는 작은 나라다. 이 중 자국민은 고작 30만 명, 나머지 90%는 외국인 노동자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국제 정치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단 하나, 노스필드 가스전 덕분이다. 1971년 발견된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전은 카타르를 단숨에 세계 3위의 가스 부국으로 만들어놓았다.
카타르는 가스 수출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자금을 기반으로,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해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군기지 알우다이드를 건설하고, 이를 미군에 무상 제공했다. 중동의 정치지형도에선 독특한 줄타기를 한다. 수니파 국가이지만 시아파인 이란과도 잘 지내고, 하마스나 헤즈볼라 같은 조직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가스전의 상당 부분이 이란과 해역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타르는 증산 능력을 갖춘 유전도 가지고 있지만 개발하지 않는다. 원유가 부족한 게 아니라,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가스로 충분히 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우디가 유가를 끌어올리려 감산을 시도할 때, 카타르는 언제든 “우리도 증산하겠다”는 식의 발언만으로도 국제 유가를 흔들 수 있는 카드가 있다.
결국, 트럼프에게 전용기를 선물하려는 이면에는 단순한 호의나 사치가 아닌, 섬세하고 노련한 중동 외교가 숨어 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와의 관계를 미리 다져두는 것, 중동의 불안정한 외교지형 속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확보하는 이중 전략. 중고 비행기 한 대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결론
트럼프가 이 비행기를 받든 안 받든, 이번 사건은 카타르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외교를 운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국 정치가 어떻게 글로벌 자원 외교의 무대로까지 확장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단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