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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을 시작한 트럼프의 이유

by 특수정찰인 2025. 3. 31.

 

남북전쟁은 1861년 4월 12일에 발발하였다. 이 전쟁은 흔히 미국 내전이라고도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남북전쟁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된다. 전쟁의 원인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북부와 남부의 정권 다툼으로 볼 수도 있다.

 

1808년에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노예 가격이 급등하였고, 기존의 50달러에서 8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남부 지역의 노예 가치는 20억 달러까지 상승했으며, 이는 남부 주민 총재산의 20%를 차지하는 수준이었다. 노예 해방 정책은 곧 남부 주민들에게 재산의 20%가 증발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었다.

 

정치적으로도 노예 해방은 북부와 남부를 각각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선거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남북전쟁 이전에는 노예 1명당 0.2표로 계산되었지만, 해방될 경우 노예들은 1인당 1표를 행사하게 된다. 해방된 노예들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공화당을 지지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는 북부뿐만 아니라 남부에서도 공화당이 정치적 우위를 점할 가능성을 높였다. 결국, 재산과 국회 의석을 모두 잃을 가능성이 있던 남부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독립을 선포하며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쟁은 남부에서 시작했지만, 전력상으로는 북부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 인구 수만 봐도 북부가 남부보다 4배나 많았으며, 공업 지역도 북부에 집중되어 있어 전쟁 물자의 97%가 북부에서 생산되었다. 하지만 북부 주민들의 개인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남부인들은 총기 사용이 생활화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총을 잘 다루었으나, 북부는 공업 지역이 많아 총기 사용 경험이 적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부는 전쟁 초기에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세를 바꿀 변수가 발생했다. 애팔래치아산맥에 거주하던 스코틀랜드계 이주민들이 북부군에 합류한 것이다. 애팔래치아산맥은 미국의 동부를 따라 올라가는 주요 산맥으로, 과거 영국과 싸우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이주해 정착한 지역이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스위스 용병과 함께 세계적인 용병으로 유명할 만큼 전투력이 뛰어났다.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무식하고 성격이 화끈하며 총을 잘 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거칠지만 솔직하고 단순한 성격이었고, 돈에 집착하는 북부 양키들과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남부 지주들을 모두 싫어했다. 그러나 싸움을 먼저 시작한 쪽이 나쁘다는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북부군에 합류했다. 전투에 능숙한 스코틀랜드 이주민들이 북부군에 가세하면서 전쟁의 흐름이 북부로 기울었고, 결국 북부가 승리하면서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하지만 전쟁 후 이들 스코틀랜드 이주민들에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해방된 노예들이 애팔래치아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이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된 것이다. 두 집단 모두 교육 수준이 낮아 노동력으로 경쟁해야 했으며, 해방된 노예들의 노동력이 더 저렴했기 때문에 이들은 일자리를 빼앗기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흑인들에게 불법 린치를 가하는 KKK단이 결성되었고, KKK단의 주력 세력이 남부가 아니라 애팔래치아 지역에서 형성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KKK단의 상징인 하얀 고깔 두건과 불타는 십자가(Fiery Cross)는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병사들을 긴급 소집할 때 사용되던 표식이었다. 애팔래치아 지역에 거주하던 스코틀랜드 이주민들은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았으며, 자동차 공장과 철강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에겐 ‘힐빌리(Hillbilly)’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이는 원래 산골 마을 백인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후 쇠락한 러스트벨트 공업지역에 사는 가난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이 지역은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나, 미국 자동차 산업이 외국산 자동차에 밀리고 중국의 저렴한 철강 제품이 수입되면서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한때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던 힐빌리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2016년,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55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가 살았던 미들타운은 암코-가와사키 철강회사 본사가 있었던 오하이오주의 지방 도시였지만, 중국산 철강의 유입으로 인해 철강 산업이 무너졌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삶도 함께 무너졌다.

 

미들타운에서는 실업자들이 술에 취해 싸우고, 가정 폭력이 난무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다. 저자는 알바를 하며 티본스테이크를 사 먹기 힘들었지만, 이웃집 마약중독자는 실업수당으로 이를 사 먹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정부가 제공한 식권으로 콜라 박스를 산 후 이를 현금화하여 술을 사 먹는 현실도 목격했다. 이러한 모습에 힐빌리들은 복지를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기 시작했고, 제조업 쇠퇴로 인한 실업 문제와 함께 이들의 분노는 트럼프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러스트벨트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역이었지만, 힐빌리들의 분노는 트럼프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메시지와 맞아떨어졌다.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 제조업을 망쳤고,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하며,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주장들은 힐빌리들의 분노를 자극하며 그들의 지지를 얻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제조업 부활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우선 법인세를 35%에서 20%로 낮추어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늘렸고, NAFTA(북미 자유무역협정)를 개정하여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일자리를 되돌리려 했다.

그 결과,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가 증가했고, 리쇼어링(해외에 나갔던 일자리를 다시 본국으로 가져오는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에 투자하기 시작했으며,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LG에너지솔루션, 현대기아차 등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장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시작한 정책들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재선을 노리고 있다. 2024년 선거에서 트럼프는 힐빌리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인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트럼프는 재선이 된다면 1기 때 성공 사례로 본 법인세 인하와 NAFTA 개정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국 자동차 업계의 현안인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미국 내 생산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