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g이 금보다 비싸다?”
핵융합의 숨은 자원 ‘삼중수소’…미국은 왜 달의 헬륨3까지 노리나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AI 반도체만큼이나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핵융합 발전이다.
핵융합은 흔히 ‘인공태양’이라고 불린다.
태양이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듯 지구에서도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뜻밖의 문제가 있다.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연료가 충분하지 않다.
특히 핵심 연료인 삼중수소가 귀하다.
그래서 미국 기업들은 이제 지구를 넘어 달에 있는 헬륨3까지 바라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인슈타인의 E=mc²에서 시작된 핵융합
1905년 26세의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같은 해 그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을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여기서 유명한 E=mc² 관계가 등장했다.
핵융합을 이해하는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자핵들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반응 전후의 질량 차이가 생기고, 이 질량 차이가 에너지로 바뀐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핵융합 연료로 꼽히는 것은 중수소와 삼중수소(D-T)다.
둘이 융합하면 헬륨-4 원자핵과 고에너지 중성자가 만들어지고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
이 중성자가 핵융합로의 블랭킷 등에 에너지를 전달하면 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열로 증기를 만들고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즉,
핵융합 → 중성자 → 열 → 증기 → 터빈 → 전기
라는 구조다.
그런데 왜 1억℃까지 올려야 할까?
문제는 원자핵이다.
원자핵은 양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지면 강하게 밀어낸다.
이 반발력을 이겨내고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엄청난 온도가 필요하다.
태양은 엄청난 중력과 압력으로 핵융합을 유지한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태양 중심부와 같은 압력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핵융합 연구에서는 1억℃ 안팎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만들고, 강력한 자기장으로 이를 가두는 방법이 핵심이 된다.
대표적인 장치가 토카막이다.
문제는 1억℃의 플라스마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유지하느냐이다.
핵융합은 단순히 뜨겁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가두고, 핵융합으로 얻는 에너지가 투입한 에너지보다 많아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 에너지로 실제 전기를 만들어 전력망에 공급해야 한다.
핵융합의 진짜 복병은 ‘삼중수소’
여기서 삼중수소가 등장한다.
중수소는 바닷물에 비교적 풍부하다.
하지만 삼중수소는 다르다.
삼중수소는 방사성 동위원소로 자연계에 극히 적게 존재하며 반감기도 약 12.3년이다.
현재 핵융합 연구에서 중요한 삼중수소 공급원 가운데 하나가 바로 CANDU 계열 중수로다.
그리고 한국에는 CANDU 원전인 월성 2·3·4호기가 있다.
월성원전이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월성원전에는 삼중수소를 분리·처리하는 삼중수소 제거설비(TRF)도 운영돼 왔다.
미국화학회(ACS) 역시 삼중수소가 캐나다 중수로의 부산물로 생산되며 현재 매우 비싼 희소 동위원소라는 점을 설명한다. 1g당 약 3만 달러라는 가격이 소개되기도 한다.
다만 인터넷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매가 12만 달러’, ‘전 세계 재고 정확히 25kg’ 같은 숫자는 출처와 산정 기준이 달라 확정된 국제 시세나 공식 재고량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숫자 하나가 아니다.
상업용 핵융합 시대가 오면 삼중수소 공급망 자체가 중요한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월성원전이 핵융합과 연결되는 이유
월성 2·3·4호기의 운영허가 만료 시점도 중요한 변수다.
월성 2호기는 2026년 11월 1일, 3호기는 2027년 12월, 4호기는 2029년 2월 운영기간이 끝날 예정이다.
하지만 이것을 두고 “이 날짜에 무조건 폐쇄된다”고 이해하면 안 된다.
현재 계속운전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설비 개선과 안전성 심사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월성 2호기는 올해 11월이라는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계속운전 여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결국 한국 입장에서는 원전의 계속운전 문제와 함께 삼중수소 공급 기반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도 장기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삼중수소를 계속 만들어낼 방법은 없을까?
있다.
바로 리튬 블랭킷이다.
핵융합로를 리튬을 포함한 물질로 둘러싸고, 핵융합에서 발생하는 고에너지 중성자를 리튬과 반응시키면 삼중수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만들어진 삼중수소를 다시 핵융합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삼중수소 소비 → 리튬으로 삼중수소 생산 → 다시 핵융합
이라는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상업용 핵융합발전소에서 완성된 연료주기로 실증된 기술은 아니다.
ITER 역시 향후 핵융합 발전소가 자체적으로 삼중수소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또 하나의 카드, 헬륨3
삼중수소의 공급 문제가 커지면서 장기적인 대안으로 거론되는 물질이 헬륨3(He-3)다.
중수소와 헬륨3를 이용하는 핵융합은 중성자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헬륨3는 양성자 2개를 가진 원자핵이기 때문에 중수소와 융합하려면 더 높은 에너지 조건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 핵융합 연구에서 가장 현실적인 주력 경로는 여전히 D-T 핵융합이다.
헬륨3 핵융합은 미래의 장기적인 선택지에 가깝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헬륨3는 지구에서도 매우 희귀하다.
그래서 시선이 달로 향한다.
미국이 달을 보는 이유
달에는 지구처럼 두꺼운 대기와 강한 자기장이 없다.
수십억 년 동안 태양풍에 노출되면서 헬륨3를 포함한 다양한 입자가 달 표토에 축적돼 왔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달의 헬륨3를 미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실적인 벽이 있다.
아직 달에서 헬륨3를 대량으로 채굴한 적이 없다.
달 표토를 실제로 퍼내 헬륨3를 분리하고, 지구로 운반해 상업적으로 판매한 사례도 없다.
즉 지금은 ‘달 헬륨3 산업’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에 투자하는 단계다.
그런데 실제로 달을 파겠다는 회사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기업이 인터룬(Interlune)이다.
인터룬은 미국 장비기업 버미어와 함께 달 표토를 처리하기 위한 굴착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공개된 시제품은 시간당 약 100톤의 달 표토를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헬륨3의 첫 번째 고객이 반드시 핵융합 기업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핀란드의 극저온 냉각장비 기업 블루포스(Bluefors)는 인터룬과 2028~2037년 달 헬륨3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연간 최대 1만 리터 규모의 헬륨3를 공급받는 계약으로 알려졌다.
주요 수요처는 바로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의 초전도 큐비트를 극저온에서 냉각하는 데 헬륨3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즉 헬륨3는 미래에
핵융합 + 양자컴퓨터
라는 두 개의 거대한 산업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NASA도 달을 ‘방문지’에서 ‘기지’로 바꾸고 있다
2026년 5월 NASA는 새로운 Moon Base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핵심은 과거 아폴로처럼 잠깐 달에 갔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달 표면에서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달의 물과 자원을 현지에서 활용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물을 얻을 수 있다면 이를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 향후 우주선 추진제와 생명유지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달은 단순한 탐사 대상이 아니라
우주 주유소이자 산업기지
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기업들은 이미 핵융합 발전소를 만들고 있다
핵융합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가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스(CFS)다.
CFS는 MIT에서 출발한 기업으로 SPARC라는 핵융합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회사는 SPARC를 통해 핵융합으로 투입 에너지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는 Q>1을 실증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2027년을 중요한 목표 시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가 ARC다.
CFS는 미국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 카운티에 약 400MW급 핵융합 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고객이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CFS의 ARC 발전소에서 생산될 전력 가운데 200MW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ARC는 아직 가동 중인 발전소가 아니다.
CFS는 2030년대 초 전력망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샘 올트먼도 핵융합에 돈을 걸었다
또 다른 대표적인 기업이 헬리온 에너지(Helion Energy)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헬리온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리온은 마이크로소프트와 50MW 규모의 전력구매계약을 맺고 2028년 전력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6년 헬리온은 Polaris에서 1억5천만℃ 이상의 플라스마를 달성했다고 발표했고, D-T 핵융합 반응도 측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 역시 상업용 발전소가 이미 완성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핵융합은 아직 실험장치에서 발전소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TAE는 헬륨3까지 준비한다
TAE Technologies도 핵융합 분야의 대표적인 민간기업이다.
그리고 2026년 8월 5일 상당히 흥미로운 발표가 나왔다.
TAE가 Black Moon Energy와 헬륨3 공급 및 상용화 협력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는 헬륨3가 단순한 과학적 아이디어를 넘어 기업들의 장기적인 연료 확보 전략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이것 역시 당장 헬륨3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됐다는 뜻은 아니다.
트럼프 미디어까지 핵융합에 뛰어들었다
더 놀라운 움직임도 있다.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TMTG)과 TAE는 2025년 말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2026년 9월 현재 합병은 완료된 상태가 아니라 2026년 4분기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합병 규모는 6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핵융합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연결된 기업이 핵융합 기업과 대형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향후 이해상충 문제도 계속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 핵융합 경쟁도 시작됐다
미국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허페이의 EAST를 중심으로 핵융합 연구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2025년 EAST는 고성능 플라스마를 1,066초, 약 17분 동안 유지하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중국은 EAST 이후에도 차세대 핵융합 실증 장치 등을 통해 발전소에 가까운 단계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CFS, 헬리온, TAE 등 민간기업에 막대한 자본이 몰리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2026년 6월 핵융합 상용화를 위한 최종 로드맵을 공개하고 2030년대 중반 상용 핵융합 전력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제 핵융합은 과학자들만의 연구 주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미래 에너지 패권 경쟁이 되고 있다.
결국 핵융합의 핵심은 ‘발전소’가 아니다
핵융합 경쟁을 단순히 “누가 먼저 인공태양을 만드느냐”라고 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진짜 경쟁은 훨씬 넓다.
삼중수소를 누가 확보하는가.
리튬 블랭킷 기술을 누가 완성하는가.
초고온 플라스마를 누가 오래 유지하는가.
중성자를 견디는 소재를 누가 개발하는가.
헬륨3를 누가 확보하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달의 자원을 누가 먼저 산업화하는가.
까지 경쟁이 확대될 수 있다.
한국에는 기회일까, 위기일까?
한국에는 독특한 위치가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원전 산업 기반을 갖고 있고, CANDU 계열 중수로인 월성원전을 운영해왔다.
따라서 핵융합 시대가 다가올수록 삼중수소의 생산·정제·저장·운송 기술은 새로운 산업적 가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월성원전의 계속운전 여부와 설비개선 문제는 별개의 현실적인 과제다.
그리고 헬륨3를 달에서 가져오는 시대가 실제로 온다고 해도 그 과정에는 수많은 기술적·경제적 난제가 남아 있다.
핵융합 시대는 정말 오는 것일까?
아직 아무도 확답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것은 분명하다.
미국 정부가 국가 차원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CFS는 실제 발전소를 준비하고 있다.
구글은 핵융합 전력 구매계약까지 체결했다.
헬리온은 2028년 전력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TAE는 헬륨3 공급망까지 준비하기 시작했다.
NASA는 달에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Moon Base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EAST에서 장시간 플라스마 운전 기록을 쌓고 있다.
핵융합은 아직 상용 발전소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연구실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원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삼중수소와 헬륨3다.
어쩌면 미래의 에너지 전쟁은 석유와 가스가 아니라
“누가 핵융합 연료를 확보하느냐”
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경쟁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의 월성원전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E=mc²에서 시작된 핵융합의 꿈이 이제 월성을 지나 달까지 향하고 있다.